1945년, 미군은 일본 본토를 향해 섬을 하나씩 건너뛰며 다가가고 있었다. 그 길목에 유황 냄새 나는 작은 화산섬이 있었다. 이오지마였다.
이 볼품없는 섬은 미군에게 꼭 필요했다.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 B-29가 중간에 비상착륙할 기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은 섬을 얻는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세계대전 지상전 09] 땅속에 숨은 요새, 이오지마](https://img.thenullpage.com/posts/5531/5531_1_9548fc.webp)
![[세계대전 지상전 09] 땅속에 숨은 요새, 이오지마 (2)](https://img.thenullpage.com/posts/5531/5531_2_1b9a04.webp)
<이오지마 상륙 지도>
섬을 지키는 일본군 지휘관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였다. 그는 다른 지휘관들과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전까지 일본군은 상륙하는 미군을 해변에서 막다가, 밤에 함성을 지르며 몸으로 부딪치는 '반자이 돌격'으로 소모되곤 했다. 구리바야시는 이 방식을 금지했다. 해변에서 헛되이 죽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섬 전체를 땅속 요새로 만들었다. 화산섬의 무른 암반을 파고들어, 수십 km에 이르는 지하 터널과 동굴 진지를 그물처럼 연결한 것이다. 병사들은 이 땅속에 숨어, 상륙한 미군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고 다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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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의 지하 진지>
1945년 2월, 미 해병대가 상륙했다. 처음엔 조용했다. 그런데 미군이 해변에 충분히 올라오자, 사방의 땅속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미군은 적을 볼 수조차 없었다. 눈앞엔 검은 화산재 언덕뿐인데, 그 속 어딘가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한 진지를 부수고 지나가면, 조금 전 지나온 자리의 땅속에서 다시 적이 나타났다. 터널로 연결돼 있으니, 부순 줄 알았던 진지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전투는 지옥이었다. 미군은 화염방사기와 폭약으로 동굴을 하나하나 틀어막으며, 그야말로 한 뼘씩 전진했다. 이 작은 섬 하나를 얻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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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바치산의 성조기>
이 전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탄생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수리바치산 정상에 미 해병들이 성조기를 세우는 순간을, 한 종군기자가 사진에 담은 것이다.
깃대를 함께 밀어 올리는 병사들을 담은 이 사진은, 곧 미국에서 승리와 희생의 상징이 됐다. 다만 이 사진 속 게양은 사실 두 번째로 세운 더 큰 깃발이었고, 첫 깃발은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정상에 깃발이 올랐어도, 섬 곳곳의 전투는 그 뒤로도 며칠이나 더 이어졌다.
이오지마의 처참함은 숫자로도 남았다. 이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 사상자가 일본군을 웃돈 몇 안 되는 상륙전으로 기록됐다. 방어하는 쪽이 더 큰 피해를 주는, 극히 드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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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이 끝난 이오지마>
이오지마는 전쟁의 양상이 어디까지 참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화력에서 압도하는 미군조차, 땅속에 숨어 죽기를 각오한 방어 앞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전투는 미국에 무거운 예감을 남겼다. 이 작은 섬 하나가 이 정도였다면, 일본 본토는 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요구할 것인가. 이 물음은, 훗날 전쟁을 끝내는 방식을 둘러싼 결정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