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그 진격 속도가 지금껏 세상이 본 어떤 전쟁과도 달랐다.


1차대전만 해도 전쟁은 느렸다. 병사들은 참호를 파고 몇 년씩 같은 자리에서 대치하며, 수십만 명이 죽어가면서도 전선은 몇 km 밀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며칠 만에 방어선이 뚫리고, 몇 주 만에 나라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 낯선 방식에 이름을 붙였다. 번개처럼 빠른 전쟁, 전격전이었다.


[세계대전 지상전 01] 처음 격는 전쟁의 속도, 전격전

<진격하는 독일 기갑부대>


전격전의 핵심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새로운 조합이었다. 전차, 급강하폭격기, 그리고 무전기. 이 셋을 한 몸처럼 묶은 것이 비결이었다.


그전까지 전차는 보병을 돕는 보조 병기로 여기저기 흩어져 쓰였다. 걷는 보병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따라다니는, 움직이는 방패 같은 존재였다. 독일은 이 발상을 통째로 뒤집었다.


전차를 흩어놓지 않고 한곳에 뭉쳐, 적진의 한 점을 뚫는 창끝으로 삼은 것이다. 그 창끝 위로는 슈투카 급강하폭격기가 날아와 폭격으로 길을 열었다. 날아다니는 대포가 적의 진지와 대포를 먼저 두들겨 부수면, 그 자리로 전차 떼가 쏟아져 들어갔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해졌다. 무전기였다. 독일은 거의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달아, 부대 전체가 실시간으로 서로 이야기하며 움직였다. 상황이 바뀌면 즉시 방향을 틀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반면 상대편은 명령 한 번 전달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세계대전 지상전 01] 처음 격는 전쟁의 속도, 전격전 (2)

<폴란드 침공 전개 지도>


이 개념을 가장 열렬히 밀어붙인 인물이 하인츠 구데리안이었다.


그는 전차를 보병 속도에 묶어두는 낡은 생각에 맞서, "일단 뚫었으면 멈추지 말고 적 후방 깊숙이 내달리라"고 주장했다. 측면이 노출되든 말든, 속도 자체가 곧 방어라는 발상이었다.


폴란드에서 이 방식은 무시무시하게 먹혔다. 방어선을 돌파한 독일 기갑부대가 폴란드군 후방으로 쏟아져 들어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지휘부와 보급을 끊어버렸다. 앞에서는 뒤따라온 보병이, 뒤에서는 전차가 조여드는 사이 폴란드군은 거대한 주머니 속에 갇혀 무너졌다.


폴란드군도 용감히 싸웠지만, 애초에 전쟁의 속도가 달랐다. 폴란드가 병력을 모아 방어선을 세우려 하면, 독일 전차는 이미 그 뒤에 가 있었다. 여기에 9월 17일 소련까지 동쪽에서 밀고 들어오면서, 폴란드는 한 달여 만에 지도에서 지워졌다.


[세계대전 지상전 01] 처음 격는 전쟁의 속도, 전격전 (3)[세계대전 지상전 01] 처음 격는 전쟁의 속도, 전격전 (4)[세계대전 지상전 01] 처음 격는 전쟁의 속도, 전격전 (5)

<폐허가 된 폴란드의 마을>


이듬해인 1940년, 세상은 그 폴란드가 약해서 진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같은 방식이 서유럽을 강타했고,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프랑스 육군마저 이 속도 앞에서 순식간에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전격전은 무기의 승리가 아니라 발상의 승리였다. 사실 프랑스도 전차 수만 따지면 독일에 뒤지지 않았고, 성능이 더 좋은 전차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 전차를 넓은 전선에 얇게 흩어 배치했다. 힘을 한 점에 모으지 못한 것이다.


같은 무기라도 어떻게 묶어 쓰느냐가 전쟁의 속도와 승패를 가른다. 전격전은 그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그것도 충격적으로 각인시킨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