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여름, 동부전선의 지도에는 커다란 혹처럼 튀어나온 지역이 있었다. 소련군 진영 쪽으로 불룩 돌출한 쿠르스크였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주도권을 잃은 독일은, 이 돌출부를 노려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돌출부의 잘록한 목을 위아래에서 동시에 잘라, 그 안에 든 소련군을 통째로 포위한다는 계획이었다. 잃어버린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독일 최후의 대공세, '성채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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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돌출부 지도>


독일은 이 공세에 회심의 신형 전차를 대거 투입했다. 앞서 무기 편에서 본 티거와 판터, 그리고 두꺼운 장갑을 두른 페르디난트 돌격포가 창끝에 섰다.


이 전차들의 강력한 장포신은 먼 거리에서 소련 전차를 일방적으로 격파할 수 있었고, 두꺼운 정면 장갑은 소련 포탄을 튕겨냈다. 종이 위에서 독일 기갑의 창끝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독일이 이 신형 전차를 충분히 갖출 때까지 공격 시점을 자꾸 미룬 것이다. 티거와 판터를 더 모으려고 몇 달을 기다리는 사이, 소련이 독일의 의도를 완전히 꿰뚫어 봤다.


[세계대전 지상전 06] 강철이 강철을 들이받은 날, 쿠르스크 (3)

<쿠르스크의 티거 전차>


소련은 독일이 언제, 어디를, 어떻게 칠지 훤히 알고 있었다. 스파이망과 정찰로 얻은 정보였다. 그래서 소련은 돌출부에 상상하기 힘든 방어선을 겹겹이 깔았다.


수천 문의 대전차포, 수십만 발의 지뢰, 그리고 몇 겹으로 파 내려간 참호가 수십 km 종심으로 쌓였다. 독일 전차가 한 겹을 뚫으면 또 한 겹, 그 뒤에 또 한 겹이 기다리는 방어의 미로였다. 소련은 독일의 창끝을 정면으로 막는 대신, 깊은 방어선 속에 빠뜨려 지치게 만드는 '종심 방어'를 택했다.


1943년 7월, 마침내 독일의 공세가 시작됐다. 그러나 독일 전차들은 예전처럼 시원하게 돌파하지 못했다. 한 겹을 뚫을 때마다 지뢰밭과 대전차포가 기다렸고, 창끝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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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된 전차들의 벌판>


절정은 7월 12일 프로호로프카에서 벌어졌다. 이 좁은 벌판에서 수백 대의 전차가 한데 뒤엉켜, 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졌다.


이 난전은 독일 전차의 장점을 오히려 지웠다. 원거리에서 먼저 쏘아 맞히는 데 능한 독일 전차가, 서로 코앞에서 뒤엉키는 근접 난투가 되자 그 사거리 우위를 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소련 전차들은 손실을 무릅쓰고 바짝 달라붙어, 강한 정면 대신 약한 측면을 노렸다.


독일은 이 방어선을 끝내 완전히 뚫지 못했다. 게다가 이 무렵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히틀러는 서쪽을 막으려 병력을 빼내야 했다. 결국 성채 작전은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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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에 나선 소련 전차>


쿠르스크는 독일 기갑부대가 벌인 마지막 대공세였다. 이 전투에서 창끝이 부러진 뒤,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다시는 대규모 공세에 나서지 못했다. 이제부터 독일은 줄곧 밀리고 방어하는 쪽이 됐고, 소련은 쉬지 않고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가장 강한 전차를 가장 두꺼운 방어선에 들이받은 전투. 쿠르스크는 아무리 날카로운 창도, 그것을 미리 알고 겹겹이 대비한 방패 앞에서는 부러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강철의 시대가 정점에서 꺾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