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여름, 독일군은 다시 동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지난겨울 모스크바 앞에서 멈춰 섰던 그들이, 이번엔 남쪽의 유전지대와 볼가강을 노리고 내려왔다.
그 길목에 한 도시가 있었다. 볼가강을 낀 길쭉한 공업 도시, 스탈린그라드였다. 하필 이름에 스탈린이 들어간 이 도시를 두고, 히틀러와 스탈린은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싸움에 빠져들었다.
군사적 가치를 넘어, 도시의 이름 자체가 두 독재자의 의지를 건 상징이 된 것이다.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1_16730b.webp)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
처음엔 독일이 압도적이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 6군은 여름 내내 소련군을 밀어붙였고, 슈투카 급강하폭격기의 융단폭격이 도시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잿더미가 문제였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가, 오히려 방어하는 쪽에 유리한 은폐물이 된 것이다.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와 골조가 천연 요새가 되어, 방어하는 병사를 숨겨줬다.
전차가 시원하게 내달리던 벌판의 전쟁은 여기서 끝났다. 대신 무너진 건물 하나, 방 하나를 두고 벌이는 전혀 다른 싸움이 시작됐다. 독일의 자랑인 기동전이 통하지 않는 전장이었다.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2)](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3_2f88da.webp)
<시가전을 벌이는 병사들>
이 도시 전투를 지휘한 소련군 사령관이 바실리 추이코프였다. 그가 이끄는 62군은 볼가강을 등지고 도시에 딱 달라붙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등 뒤가 강이라 물러설 곳도 없었다.
추이코프의 전술은 독특하고 지독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독일군을 껴안으라"고 명령했다. 최대한 가까이 달라붙어 싸우라는 뜻이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서로 코앞에서 뒤엉키면, 독일이 자랑하는 항공 폭격과 포병 지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아군까지 휘말리니까. 이 '끌어안기' 전술로, 소련군은 독일의 최대 강점인 화력 우위를 통째로 무력화했다.
그 결과 전투는 상상하기 힘든 형태로 변했다. 같은 건물의 위층은 독일군이, 아래층은 소련군이 차지한 채 며칠씩 총격전을 벌였다. 기차역 하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었다. 독일군은 이 끔찍한 도시 싸움을 '쥐들의 전쟁'이라 불렀다.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3)](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4_fe5819.webp)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4)](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5_b0a48f.webp)
<건물 잔해 속의 전투>
그 처절함의 상징이 '파블로프의 집'이었다. 야코프 파블로프 병장이 이끄는 소수의 소련군 수비대가 한 아파트 건물을 요새 삼아, 두 달 가까이 독일군의 파상 공세를 막아냈다. 독일군 지도에 이 건물 하나가 어엿한 '요새'로 표시됐을 정도였다.
독일이 이렇게 시가전의 늪에 발이 묶여 도시에만 온 신경을 쏟는 사이, 소련은 조용히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5)](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6_8b0036.webp)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6)](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7_19619b.webp)
<천왕성 작전 포위 지도>
1942년 11월, 소련이 '천왕성 작전'을 개시했다. 스탈린그라드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대신, 도시 양옆으로 길게 뻗은 독일군의 허약한 측면을 노린 것이다.
이 측면을 지키던 것은 정예 독일군이 아니라, 장비가 부실하고 사기가 낮은 루마니아·이탈리아 등 동맹국 군대였다. 소련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이 약한 고리를 순식간에 돌파했다. 그리고 도시 뒤편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남북 양쪽 부대가 만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싸우던 독일 6군 전체, 30만에 가까운 대군이 거대한 포위망 안에 완전히 갇힌 것이다. 도시를 삼키려던 군대가, 도시와 함께 통째로 삼켜졌다.
![[세계대전 지상전 05] 건물 하나를 두고 벌인 지옥, 스탈린그라드 (7)](https://img.thenullpage.com/posts/5527/5527_10_58e21c.webp)
<독일군 포로 행렬>
히틀러는 후퇴를 불허했다. 제자리를 사수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공중으로 보급하겠다는 약속은 턱없이 부족했고, 포위된 6군은 혹독한 겨울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와 탄약 부족에 서서히 무너져갔다.
궁지에 몰린 히틀러는 파울루스를 원수로 진급시켰다. 독일 역사상 원수가 적에게 항복한 적이 없다는, 그러니 차라리 자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파울루스는 그 뜻을 따르지 않았다.
1943년 2월, 파울루스는 항복했다. 9만 명이 넘는 독일군이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그 혹독한 포로 생활에서 살아 고향으로 돌아온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스탈린그라드는 동부전선 전체의 분수령이었다. 무적처럼 보이던 독일군이 처음으로 야전군 하나를 통째로 잃었고, 그 뒤로 전쟁의 주도권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소련으로 넘어갔다.
넓은 벌판에서 무적이던 독일의 기동전은, 무너진 도시의 벽돌 더미 앞에서 힘을 잃었다. 가장 빠른 군대를 가장 느린 싸움에 끌어들인 것. 그것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이 피로 써낸 승리의 핵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