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22일 새벽, 독일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 침공을 개시했다. 목표는 불과 2년 전 불가침 조약을 맺은 동맹, 소련이었다.


300만이 넘는 병력에 수천 대의 전차와 항공기가 국경을 넘어 세 방향으로 쏟아졌다. 북쪽으로는 레닌그라드, 가운데로는 모스크바,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바르바로사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침공은, 끝내 그 거대함 자체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세계대전 지상전 03]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던 땅 바르바로사[세계대전 지상전 03]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던 땅 바르바로사 (2)

<바르바로사 3방향 진격 지도>


초반의 성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습을 당한 소련군은 우왕좌왕했고, 독일 기갑부대는 전격전으로 소련군을 거대한 주머니 속에 몰아넣는 포위섬멸전을 거듭했다. 국경 근처 민스크와 스몰렌스크에서만 수십만 명이 포로가 됐다.


절정은 그해 9월 키예프 포위전이었다. 원래 모스크바로 향하던 구데리안의 기갑부대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우크라이나에 몰려 있던 소련 대군의 뒤를 크게 감쌌다. 이 포위망 안에서, 독일군 발표로 무려 66만 명이 포로가 됐다.


이는 전쟁사에서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포로를 낸, 사상 최대의 포위전이었다. 히틀러는 이 승리를 두고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전투"라고 자랑했다.


[세계대전 지상전 03]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던 땅 바르바로사 (3)

<포로가 된 소련군 대열>


그런데 바로 이 눈부신 승리들이 함정이었다. 소련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고, 아무리 군대를 잡아 가둬도 새로운 군대가 동쪽에서 끝없이 나타났다.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는 상대였던 것이다.


독일의 보급선은 진격할수록 끝없이 길어졌다. 국경에서 수백, 수천 km를 내달린 탓에, 탄약과 연료와 식량이 최전선까지 닿는 데 점점 애를 먹었다. 게다가 소련의 도로는 대부분 포장이 안 돼 있어서, 비가 오면 온 대지가 진창으로 변해 트럭과 말과 대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넓은 땅과 궂은 길이 그 자체로 독일군을 지치게 하는 무기였다.


그리고 결정타가 찾아왔다. 겨울이었다. 여름이면 전쟁이 끝날 거라 자신한 독일군은 방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의 겨울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졌다. 여름 군복 차림의 병사들이 얼어 죽고, 기름이 얼어 전차와 총이 먹통이 됐다.


[세계대전 지상전 03]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던 땅 바르바로사 (4)[세계대전 지상전 03]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었던 땅 바르바로사 (5)

<눈 속에 멈춰 선 독일군>


1941년 12월,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독일의 진격은 끝내 멈춰 섰다. 도시의 첨탑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오히려 추위에 익숙하고 두꺼운 방한복을 갖춘 소련군이 반격에 나섰다. 시베리아에서 새로 끌어온 부대까지 가세해, 지칠 대로 지친 독일군을 수도에서 밀어냈다. 무적처럼 보이던 독일의 진격 신화에 처음으로 금이 간 순간이었다.


바르바로사는 전술의 실패가 아니라 규모의 오판이었다. 독일은 전투마다 화려하게 이기고도, 소련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삼키기엔 근본적으로 힘이 모자랐다. 이길수록 전선은 넓어지고 보급은 늘어지는, 이기면서 지쳐가는 싸움이었다.


한 번에 삼킬 수 없는 상대를 성급하게 물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 답을, 독일은 러시아의 끝없는 벌판과 눈밭에서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