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프랑스에는 난공불락이라 믿은 요새선이 있었다. 독일과 맞닿은 국경을 따라 수십 년에 걸쳐 겹겹이 쌓아 올린 콘크리트 요새, 마지노선이었다.


지하 벙커와 거대한 포대, 병사들의 숙소까지 갖춘 이 요새선은 당대 최강의 방어 시설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이 이 선에 부딪혀 1차대전 때처럼 피를 흘릴 거라 믿었다. 그런데 독일은 마지노선을 뚫지 않았다. 그냥 옆으로 돌아버렸다.


[세계대전 지상전 02] 뚫는 대신 돌아버린 낫질, 프랑스 함락

<마지노선의 요새>


독일의 계획은 '낫질 작전'이라 불렸다. 낫으로 풀을 베듯, 크게 우회해 적의 뒤를 단번에 쓸어버린다는 뜻이었다. 이 대담한 구상을 짜낸 인물이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었다.


원래 독일군 수뇌부의 계획은 평범했다. 1차대전 때처럼 벨기에를 지나 정면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영국도 바로 그걸 예상하고, 최정예 부대를 벨기에 국경 쪽에 배치해뒀다.


만슈타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는 연합군 주력이 북쪽 벨기에로 몰려나올 때, 정작 그 아래 아르덴 숲으로 독일의 진짜 창끝을 찔러 넣자고 했다.


아르덴은 울창하고 험한 삼림지대였다. 길이 좁고 가팔라 대군, 특히 전차 부대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프랑스는 이곳의 방어를 얇게 뒀다. 바로 그 '설마'가 함정이었다.


[세계대전 지상전 02] 뚫는 대신 돌아버린 낫질, 프랑스 함락 (2)[세계대전 지상전 02] 뚫는 대신 돌아버린 낫질, 프랑스 함락 (3)

<낫질 작전 전개 지도>


1940년 5월, 작전이 시작됐다. 계획대로 연합군 주력은 독일의 유인책에 걸려 북쪽 벨기에로 전진했다. 바로 그 순간, 구데리안의 기갑부대가 통과 불가능하다던 아르덴 숲을 뚫고 나왔다.


숲을 빠져나온 독일 전차들은 뫼즈강을 건너, 프랑스 방어선의 옆구리 뒤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서쪽 해안을 향해 무섭게 내달렸다.


이 질주가 만든 그림은 치명적이었다. 벨기에로 나가 있던 연합군 최정예가, 등 뒤가 잘린 채 거대한 자루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앞에는 독일 보병, 뒤에는 해안까지 내달린 독일 전차. 수십만 대군이 순식간에 포위됐다.


[세계대전 지상전 02] 뚫는 대신 돌아버린 낫질, 프랑스 함락 (4)[세계대전 지상전 02] 뚫는 대신 돌아버린 낫질, 프랑스 함락 (5)

<덩케르크 해안의 철수>


포위된 병력은 프랑스 북부의 덩케르크 항구로 밀려났다. 등 뒤는 바다였다. 여기서 영국은 필사적인 철수 작전을 벌였다. 군함은 물론 민간 어선과 유람선까지 총동원해, 해협을 건너 병사들을 실어 날랐다.


이 덩케르크 철수로 30만이 넘는 병력이 간신히 영국으로 빠져나갔다. 목숨은 건졌지만, 전차와 대포 등 무거운 장비는 거의 다 해변에 버리고 몸만 건진 참담한 후퇴였다.


몸을 빼낸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그대로 무너졌다. 파리는 6월에 함락됐고,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프랑스 육군은 개전 6주 만에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프랑스 함락은 요새의 실패가 아니라 상상력의 실패였다. 프랑스는 지난 전쟁의 방식대로 튼튼한 선을 그었지만, 독일은 그 선을 뚫는 대신 아예 무의미하게 만드는 우회를 택했다.


가장 강한 방벽도, 적이 그냥 돌아가 버리면 소용이 없다. "적이 정면으로 올 거라 단정하지 말라"는 이 전투의 교훈은, 지금도 군사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