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바로 그 무렵,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성도 높은 전함이 등장했다.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이다.


이미 바다의 주역이 항공모함으로 넘어간 시점에 태어났지만, 아이오와급은 전함이라는 개념이 도달한 정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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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 전함>


주무장은 40.6cm(16인치) 주포 아홉 문이었다. 야마토의 46cm 포보다는 작았지만, 사격통제가 훨씬 정교했다.


핵심은 레이더 사격통제였다. 아이오와급은 레이더로 적함의 거리와 방향, 속도를 정밀하게 잡아내, 눈에 보이지 않는 밤이나 먼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포탄을 명중시킬 수 있었다.


포의 크기가 아니라, 그 포를 얼마나 정확히 쏘느냐로 승부하는 시대의 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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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의 16인치 주포탑>


또 하나의 강점은 속도였다. 아이오와급은 33노트에 이르는, 전함답지 않게 빠른 발을 지녔다.


이 빠른 발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함대의 중심이 된 고속 항공모함을 바짝 따라다니며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전함의 시대가 저물었기에, 가장 강한 전함조차 이제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역할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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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으로 항진하는 아이오와급>


그래서 아이오와급의 실제 임무는 거대한 함포 결투가 아니었다. 항공모함 곁을 지키며 몰려드는 적기를 대공포로 막아내거나, 상륙 작전 때 육지의 적진을 거대한 주포로 두들기는 일이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전함의 주포가, 이제 다른 배를 지키고 해안을 포격하는 조연의 무기가 된 셈이다. 가장 완벽한 전함은, 전함이 더는 주인공이 아닌 시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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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포를 발사하는 아이오와급>


아이오와급의 이야기에는 묘한 쓸쓸함이 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정교한 전함이, 정작 전함끼리의 대결이라는 본래 무대를 거의 얻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완성도 덕분에, 이 배들은 누구도 예상 못한 긴 수명을 얻게 된다. 그 놀라운 두 번째 삶의 이야기가, 마지막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