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이 저무는 자리를, 전혀 새로운 군함이 대신 채웠다. 갑판 위에서 비행기를 띄우는 배, 항공모함이다.


그 새 시대의 첫 주역이 일본의 항공모함 아카기였다.


태평양전쟁의 문을 연 칼끝이자, 반년 만에 그 칼이 부러진 배이기도 하다.


[고전무기 군함 06] 진주만을 공습한 아카기

<항공모함 아카기>


아카기는 일본 기동함대의 기함이었다. 전함처럼 거대한 함포로 싸우는 배가 아니라, 수십 대의 함재기를 싣고 다니다 날려 보내 싸우는 배였다.


이 배의 진짜 무기는 함포가 아니라, 갑판에서 날아오르는 폭격기와 뇌격기였다. 배 자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비행기들이 수백 km 밖의 적을 때렸다.


[고전무기 군함 06] 진주만을 공습한 아카기 (2)

<아카기의 비행갑판>


이 새로운 방식의 위력이 처음 폭발한 것이 1941년 진주만 공습이었다.


아카기를 비롯한 일본 항공모함들은, 미국이 상상도 못한 거리에서 함재기를 날려 진주만의 미 태평양함대를 기습했다.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과 어뢰에 줄줄이 침몰했다. 거대한 전함들이 비행기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이 공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고전무기 군함 06] 진주만을 공습한 아카기 (3)

<진주만으로 향하는 함재기들>


그러나 칼끝은 반년 만에 부러졌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는 운명의 순간을 맞는다.


함재기를 재무장하느라 갑판에 폭탄과 연료가 어지럽게 널려 있던 바로 그때, 미국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급강하폭격기들이 아카기의 갑판을 정확히 때렸다. 갑판 위의 폭탄과 연료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기함 아카기는 걷잡을 수 없이 불타 결국 가라앉았다.


[고전무기 군함 06] 진주만을 공습한 아카기 (4)

<미드웨이에서 불타는 일본 항모>


단 몇 분의 급강하폭격이, 진주만을 호령하던 기함의 운명을 갈랐다. 아카기의 침몰과 함께 일본은 숙련된 조종사와 항모 전력을 한꺼번에 잃었고, 태평양의 주도권도 이때 미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카기는 항공모함의 시대를 연 배이자, 그 시대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몸소 보여준 배였다. 비행기로 흥한 배가, 비행기에 무너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