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블록의 마지막은, 전쟁 자체를 끝내버린 폭격기다. 2차대전 최강의 폭격기, 미국의 B-29 슈퍼포트리스다.
B-29는 당대 기술의 정점이었다. 개발에 들인 비용이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계획보다 많았다고 할 정도로, 미국이 국력을 쏟아부은 기체였다. 그만큼 이 폭격기에는 당시로선 SF에 가까운 기술이 잔뜩 들어갔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1_cabdda.webp)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2)](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2_3521e6.webp)
<B-29 폭격기>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여압 객실이었다. 1만 미터에 가까운 고고도는 공기가 희박하고 영하 수십 도에 이르는 혹독한 환경이다. B-17 승무원들은 그 추위 속에서 산소마스크와 두꺼운 방한복에 의지해 떨며 싸웠다.
반면 B-29 승무원은 따뜻하고 공기가 채워진 객실 안에서 셔츠 차림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기체 앞뒤의 여압 구역을 잇는 좁은 터널로 사람이 오갈 수도 있었다. 폭격기를 '나는 기계'가 아니라 '나는 건물'에 가깝게 만든 발상이었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3)](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3_50eb2a.webp)
<B-29의 여압 객실 내부>
방어 무장은 더 미래적이었다. 사람이 직접 총좌에 매달려 바람을 맞는 대신, 떨어진 자리에서 조준경으로 적기를 겨누면 컴퓨터식 조준기가 거리와 속도, 기체의 흔들림까지 계산해 원격 기관총탑을 자동으로 움직였다. 한 명의 사수가 여러 총탑을 번갈아 통제할 수도 있었다.
이 원격 총탑들이 12.7mm 기관총으로 기체를 둘러쌌고, 꼬리에는 더 강력한 20mm 기관포가 자리 잡았다. 사람의 감과 완력에 의존하던 폭격기 방어를, 기계 계산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셈이었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4)](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5_65f952.webp)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5)](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6_da7417.webp)
<B-29의 원격 기관총탑>
엄청난 항속거리와 폭탄 적재량에 고고도 성능까지, 모든 면에서 한 세대를 앞선 기체였다. 다만 너무 앞서간 탓에 대가도 따랐다. 무리하게 출력을 끌어올린 엔진이 자주 과열돼 불이 붙었고, 초기엔 적의 총탄보다 자기 엔진 화재로 잃은 기체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44년 중반부터 B-29는 마리아나 제도의 기지를 발판으로 일본 본토를 직접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랑하던 고고도 정밀 폭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 상공의 강한 제트기류와 두꺼운 구름이 폭탄을 엉뚱한 곳으로 날려, 정밀 폭격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6)](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7_6d6abe.webp)
<폭탄을 투하하는 B-29>
그러자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가 방식을 통째로 뒤엎었다. 그는 폭격기들의 방어 기관총까지 상당수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일본의 야간 방공이 약하다는 판단 아래, 총과 탄약과 사수의 무게를 덜어 그만큼 소이탄을 더 싣겠다는 도박이었다. 높은 고도의 정밀 폭격을 버리고, 낮은 고도에서, 밤에, 도시 전체에 불을 지르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1945년 3월 9일 밤, 도쿄 대공습이 그 첫 무대였다. 300대가 넘는 B-29가 저공으로 들어와 소이탄을 퍼부었고, 목조 가옥이 빽빽한 도쿄는 거대한 불바다가 됐다. 하룻밤 사이 십만 명 안팎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차례로 같은 운명을 맞았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7)](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11_96d3cb.webp)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8)](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12_f17488.webp)
<도쿄 대공습 무렵의 B-29>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남아 있었다. 1945년 8월, 인류 역사를 가른 두 발의 폭탄을 떨군 비행기가 모두 B-29였다.
이 임무를 위해 일부 기체는 특별히 개조됐다. 무거운 폭탄 한 발을 싣기 위해 방어 무장과 장갑을 덜어내 무게를 줄인, 가장 가벼우면서 가장 무거운 임무를 진 폭격기였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폭탄을 떨군 '에놀라 게이', 8월 9일 나가사키를 때린 '복스카' — 이 두 발과 함께 전쟁은 끝을 향해 갔다.
동시에 인류는, 단 한 발로 도시 하나를 지울 수 있는 시대로 들어섰다.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9)](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9_f05328.webp)
![[고전무기 전투기 10] 일본을 끝장낸 폭격기 B-29 (10)](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7/4457_10_24b3f0.webp)
<원자폭탄을 탑재한 B-29>
B-29의 이야기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그 폭격이 끝낸 전쟁의 이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민간인의 죽음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B-29는 항공 전력이 도달한 극한을 보여준 폭격기였다. 비행기 한 종류가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가장 무거운 방식으로 증명한 기체였다. 그리고 이 거대한 폭격기가 연 핵의 시대는, 우리가 현대 편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