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여름 어느 날, 독일 상공을 날던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을 봤다. 프로펠러도 없는 비행기 한 대가, 그때껏 본 어떤 전투기보다 빠르게 편대 사이를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처음 보는 그 물체에 승무원들은 "유령"이라는 말까지 붙였다. 세계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 전투기, 독일의 메서슈미트 Me 262였다.
![[고전무기 전투기 06] 너무 일찍 와버린 세계 최초 제트기 Me 262](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3/4453_3_f8fd31.webp)
![[고전무기 전투기 06] 너무 일찍 와버린 세계 최초 제트기 Me 262 (2)](https://img.thenullpage.com/posts/4453/4453_4_d7a15e.webp)
<Me 262 제트 전투기>
262는 차원이 다른 전투기였다. 프로펠러기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았고, 기수에 30mm 기관포 네 문을 몰아넣어 한 번 스치듯 지나가며 쏘아도 폭격기가 두 동강 났다.
여기에 'R4M'이라는 공대공 로켓까지 달았다. 폭격기 편대 바깥에서 이 로켓을 무더기로 쏘아 한 번에 여러 대를 떨구는 식이었다. 가까이 붙어 기관총을 맞대던 기존 공중전의 문법을, 262는 통째로 갈아치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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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262의 제트 엔진>
이 무서움이 실전에서 드러난 것이 1944년 후반 '제국 방공전'이었다. 독일 본토로 밀려드는 미국 폭격기 편대 사이를 262가 번개처럼 가르며, 호위 전투기가 손쓰기 전에 폭격기를 떨궜다.
1945년 봄에는 독일 최고의 에이스들을 모은 특별 부대 'JV 44'가 등장했다. 아돌프 갈란트가 이끈 이 정예 부대는 며칠 사이에 적지 않은 폭격기를 격추하며, 262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똑똑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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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중인 Me 262>
그러나 262는 너무 늦게, 너무 적게 나왔다. 본격 투입됐을 무렵 독일은 이미 패색이 짙었고, 하늘의 주인은 연합군이었다.
제트 엔진도 미숙했다. 엔진 수명이 고작 수십 시간에 불과해 자주 고장 나거나 불이 붙었고, 조종사들은 가속이나 감속을 조금만 거칠게 해도 엔진이 멈출까 조심해야 했다. 전쟁 말 독일은 이 엔진을 돌릴 연료조차 부족했다.
운용은 더 꼬였다. 히틀러가 이 전투기를 요격기가 아니라 폭격기로 쓰라고 고집하는 바람에, 정작 본래 역할인 요격에 제때 투입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가장 절실한 시기에 가장 엉뚱한 임무에 묶여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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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Me 262>
연합군은 262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제트기는 이착륙할 때 속도가 느려 무방비해진다는 점을 노려, 무스탕 같은 호위기들이 262의 기지 주변에 진을 치고 뜨고 내리는 순간을 사냥한 것이다.
그래서 262 조종사들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과 맞붙는 공중이 아니라, 오히려 제 기지로 돌아오는 착륙 직전이었다. 무적의 속도를 가진 전투기가, 가장 느려지는 순간에 가장 쉽게 죽었다.
결국 262는 압도적 성능에도 불구하고, 전투보다 고장과 연료 부족과 매복으로 더 많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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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노획된 Me 262>
종전 후, 연합국은 노획한 262를 앞다투어 본국으로 실어 갔다. 미국도 소련도 이 기체를 철저히 분석했고, 그 연구는 이후 양국의 제트 전투기 개발에 적잖은 자양분이 됐다.
262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 전투기였다. 이 기체와 함께 하늘은 프로펠러 시대를 끝내고 제트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미래는 이미 지고 있는 전쟁 속에 도착했다. 하늘판 티거 II라 할까 — 가장 앞선 무기였지만, 너무 늦고 너무 적어 끝내 전쟁의 결말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전투기가 연 제트의 문은, 우리가 나중에 만날 현대 전투기들로 곧장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