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막바지, 영국은 새 전차 하나를 막 완성했다. 센추리온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먼저 끝나버렸다. 시험 삼아 유럽 대륙으로 보낸 몇 대가 도착했을 무렵, 독일은 이미 항복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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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추리온 전차>


아슬아슬하게 전쟁을 놓친 이 전차는, 그러나 그 뒤로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당시 전차는 보통 두 갈래였다. 빠르지만 약한 '순항전차'와, 강하지만 느린 '보병전차'로 나뉘어 있었다. 앞서 본 처칠이 후자의 대표였다.


센추리온은 이 둘을 하나로 합쳤다. 강한 화력과 두꺼운 장갑, 쓸 만한 기동성을 한 대에 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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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추리온의 주포와 차체>


이 "하나로 다 되는 전차"라는 발상이 핵심이었다. 굳이 종류를 나누지 않고, 한 전차가 모든 역할을 맡는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주력 전차(MBT)'의 개념이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센추리온은 그 첫 완성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 전차는 개량의 여지가 넉넉했다. 더 강한 포로, 더 두꺼운 장갑으로, 시대에 맞춰 계속 손볼 수 있는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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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을 거듭한 센추리온>


덕분에 센추리온은 수십 년을 현역으로 뛰었다. 2차대전엔 못 갔지만, 그 빈자리를 다른 전장들에서 화려하게 메웠다.


첫 실전은 한국전쟁이었다. 1951년 임진강 전투에서, 센추리온은 얼어붙은 능선을 버티며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내고 영국군의 철수를 끝까지 엄호했다.


진가가 가장 빛난 곳은 중동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센추리온을 들여와 꾸준히 개량했고, 수적으로 열세인 전차전에서 이 전차로 몇 배 많은 적 기갑부대를 막아내며 명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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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 투입된 센추리온>


전차 블록의 마지막을 센추리온으로 닫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전차가 고전과 현대를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엔 닿지 못했지만, 그 뒤 모든 전차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보여줬다. 순항이냐 보병이냐를 따지던 시대를 끝내고, "한 대로 다 한다"는 현대 전차의 공식을 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