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차를 떠올려 보자. 차체 위에 빙글 도는 포탑이 있고, 그 포탑 끝에 주포가 달려 있다.


이 너무도 당연한 형태를 처음 만든 전차가 있다. 1차대전 막바지에 나온 프랑스의 르노 FT다.


[고전무기 전차 07] 지금까지 모든 전차는 이 전차를 베꼈다, 르노 FT[고전무기 전차 07] 지금까지 모든 전차는 이 전차를 베꼈다, 르노 FT (2)

<르노 FT 전차>


이 전차가 왜 혁명이었는지 알려면, 그전의 전차들을 봐야 한다.


당시 전차는 거대한 강철 상자였다. 영국의 마크 I은 마름모꼴 차체 옆구리에 포를 박았고, 한 방향만 겨눌 수 있어 사람도 여덟 명씩 들어가야 했다.


크고, 비싸고, 느렸다. 전차라기보다 굴러가는 요새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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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에 포를 단 초기 전차, 영국 마크 I>


르노 FT는 발상을 통째로 뒤집었다. 작은 차체 위에 360도 도는 포탑 하나를 얹은 것이다.


운전수는 앞, 엔진은 뒤, 무장은 회전포탑에. 단 두 명만 타는 이 작은 전차가, 한 문의 포로 사방 어디든 겨눌 수 있게 됐다.


이 배치가 바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차의 기본형이다. T-34도, 티거도, 오늘날의 최신 전차도 본질은 르노 FT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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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FT의 회전포탑>


형태만 바꾼 게 아니었다. 전차를 쓰는 방식까지 바꿨다.


그전까지 전차는 '몇 대 안 되는 거대한 돌파 병기'였다. 르노 FT는 정반대를 노렸다. 작고 값싸게 만들어 떼로 굴리는 것이다.


프랑스는 이 작은 전차를 수천 대씩 찍어내, 보병과 함께 물밀듯 내보내려 했다. 소수의 괴물 대신 다수의 벌떼라는, 지금도 익숙한 발상이 여기서 나왔다.


실전 데뷔는 1918년이었다. 그해 봄 숲속 전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르노 FT는 연합군의 대반격 곳곳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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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선 르노 FT>


흥미로운 인연도 있다. 1차대전에 참전한 미군도 이 전차를 받아 썼는데, 그 전차부대를 이끈 젊은 장교가 훗날의 명장 조지 패튼이었다.


패튼은 전차 앞에서 직접 걸으며 부대를 지휘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2차대전 기갑전의 상징이 된 인물의 첫 전차가, 바로 이 작은 르노 FT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 전차는 질기게도 오래 살았다. 값싸고 튼튼한 데다 여러 나라가 들여간 덕에, 1차대전이 끝나고 20년이 지난 2차대전 초반까지도 곳곳에서 굴러다녔다.


화력도 장갑도, 지금 기준으론 보잘것없다. 그러나 르노 FT가 정한 형태와 발상은 한 세기가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전차를 하나만 꼽으라면, 답은 가장 강한 전차가 아닐 수 있다. 모두가 베낀 이 작은 전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