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이름에 별명이 붙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 그 별명이 "잘 타는 깡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미군의 주력 전차 셔먼은 그런 별명을 여럿 가졌다. 독일군은 "톰미쿠커", 연합군 전차병들은 "론슨"이라 불렀다.


론슨은 당시 유명한 라이터 브랜드였다. 광고 문구가 "한 번에 켜진다"였으니,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2)[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3)

<셔먼 전차의 정면>


셔먼이 잘 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초기형은 피탄되면 내부의 포탄이 연쇄적으로 유폭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차가 뚫리는 것과 승무원이 타 죽는 것은 다른 문제다. 셔먼은 한 번 뚫리면 빠져나올 시간을 잘 주지 않았다.


성능도 독일 전차에 밀렸다. 75mm 주포로는 티거나 판터의 정면 장갑을 정상적인 거리에서 뚫기 어려웠다.


장갑도 얇았다. 일대일로 붙으면 셔먼은 분명 불리한 쪽이었다.


[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4)[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5)

<셔먼의 75mm 주포>

그런데 미국은 이 전차로 전쟁을 이겼다. 비결은 1편의 T-34와 같은 곳에 있었다.


셔먼은 만들기 쉬웠고, 무엇보다 많이 만들어졌다. 전쟁 기간 생산된 셔먼은 5만 대에 가깝다.


게다가 미국의 진짜 힘은 전차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었다. 고장 난 셔먼은 빠르게 회수돼 수리됐고, 부서진 자리는 곧바로 새 차로 채워졌다.


티거 한 대가 셔먼 다섯 대를 잡아도, 여섯 번째 셔먼이 그 티거를 잡으면 끝이었다. 그리고 미국에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셔먼이 늘 있었다.


[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6)[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7)[고전무기 전차 03] 너무 잘 타서 별명이 '라이터'였던 전차, 셔먼 (8)

<줄지어 생산되는 셔먼>


셔먼에게는 또 다른 강점도 있었다. 신뢰성이었다.


티거가 잦은 고장과 무게에 발목 잡히는 동안, 셔먼은 좀처럼 퍼지지 않고 잘 굴러다녔다. 스스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전략적으로 큰 이점이었다.


후기형으로 가며 약점도 보완됐다. 더 강한 76mm 주포가 달렸고, 포탄을 물에 적신 격벽 안에 보관해 유폭 위험을 크게 줄였다.


'라이터'라는 오명도 이 무렵부터 옅어졌다.


셔먼은 화려한 전차가 아니었다. 가장 강하지도, 가장 두껍지도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좋았고, 충분히 많았으며, 어디서든 굴러갔다. 전쟁은 한 번의 결투가 아니라 끝없는 소모전이라는 사실을, 셔먼은 미국식으로 증명했다.


티거가 "강함"의 끝을 보여줬다면, 셔먼은 T-34와 함께 "충분함"의 힘을 보여준 전차였다.